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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4 부평교회 주일 설교

"지혜가 으뜸이니, 지혜를 얻어라.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명철을 얻어라" (시편 4:7 ;새번역). 유진 피터슨은 이부분을 "모든 것을 팔아 지혜를 사라"고 번역한다. 우리 인생에 지혜가 그렇게 필요하고 증요하다는 말이다.

왜 그렇게 지혜가 필요한가? 늘 새로운 도전들이 있고, 내가 사는 인생은 그 누구의 인생과도 같지 않으며, 내가 사는 시대 상황은 앞선 그 어떤 시대와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지혜가 필요한가? 새로운 도전을 극복할 지혜가 필요하고, 스승을 능가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앞선 세대를 능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편 119:98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시편 119:99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시편 119:100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굉장히 교만해 보이는 말들이다. 원수보다 지혜로워야 한다는 말은 그나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스승보다, 앞선 세대 (=노인)보다 더 지혜로워졌다고 하는 표현은 너무 교만해 보인다. 시인은 정말 자기 잘난 얘기를 하는 것일까? 그는 정말 남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되려고 말씀을 묵상한 것일까?

필요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각자 인생을 살면서, 스승보다, 앞선 세대보다 더 지혜로워야 할 필요가 있는가?

그렇다. 새 시대는 새 목표와 도전이 있고, 각자의 인생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게대가 아무리 스승의 가르침이 좋고 부모 세대의 지혜가 뛰어나도,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하면서 부모 핑계를 대거나 스승의 핑계를 댈 수는 없다. 그 모든 가르침을 받더라도 결국 내 인생의 문제를 결정할 때는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많은 경우에 스승이나 앞선 세대보다 더 뛰어난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어려움이고 현실이다.

그 어떤 스승도, 그 어떤 부모세대도 책임질 수 없는 나의 인생, 나의 시대의 문제에 대한 최종적 지혜를 나는 어디에서 얻어야 하는가? 바로 말씀의 묵상이다.

시편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시편 119:99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 혹은 "읊조리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시아흐)는 묵상을 가르키는 표현이다. 곰곰이 되새기고, 골똘히 생각하고, 온 정신과 마음을 다해 곱씹어 보기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궁시렁궁시렁 소리가 나오는 것이 곧 묵상이다.

그렇다면 묵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은 말씀 묵상의 기술적 측면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말씀을 묵상하는 마음의 자세, 즉 마음가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 묵상의 마음가짐 세 가지를 정리해보자.

첫째, 지켜야 할 재산

시편 119:100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지키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나차르)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둑맞지 않도록 단단히 지킨다는 의미이다 (잠언 4:23). 너무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재산처럼 말씀을 지킨다, 따른다는 의미이다.

시편 119: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여기서 "지키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샤마르)는 지키다, 간수하다, 준수하다, 라는 의미이다. 비싼 물건 들고 있거나, 비싼 보석을 차고 있으면 아무 데나 함부로 들어가지 않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값진 보물이고 꼭 지켜야할 재산이므로, 그 말씀을 잃어버릴 악한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는 말이다. 좋은 길은 편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길이다. 나쁜 길은 험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길이다.

둘째, 선택과 결정의 기준

시편 119: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101 절에 의하면 저자의 선택의 기준은 바로 말씀이다. 좋은 길, 나쁜 길의 판단 기준이 돈이나 편안함이 아니라, 말씀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시편 119:104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행위"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오라흐)는 길을 의미한다. 대부분은 다른 번역들은 "길"로 변역하고 있다. 길이 거짓되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좋아 보이고, 잘 될 것 같고, 편할 것 같지만, 막상 그곳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더 귀한 것을 잃게 된다는 말이다. 소탐대실이다.

셋째,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시편 119:102 주께서 (=당신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당신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인칭 대명사 "당신께서" (=주께서)가 강조되었다. 말씀을 내가 알아서 공부하고, 내가 알아서 연구해서, 내가 알아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다는 의미이다. 성경 한 절을 읽더라도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다윗의 문학적 탁월함을 논하는 데 그친다면 무의미하다.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 다윗이 쓴 시가 맞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이 말씀을 성경에 포함시키고, 오늘 내가 이 말씀을 읽게 하시는가? 그렇게 보면 그 것은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는 어린 양,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라고,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책임지실 것이라고, 오늘 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교훈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말씀의 맛을 알아야 살맛이 난다는 것이다.

시편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가 어찌 그리 단지요 내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왜 이렇게 살맛이 안 나는가? 말씀의 맛이 없어서 그렇다. 말씀의 맛을 알면 살맛이 난다. 말씀에서 내가 살아가는 삶에 필요한 모든 지혜가 나오기 때문이다. 만나를 먹는 방법이 여러 가지듯 (출애굽기 16:23), 말씀 묵상에는 여러 기술적 방법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만나를 먹고, 말씀을 먹는 마음의 자세, 마음가짐이다. 말씀을 대할 때마다, 이것이 내 삶의 모든 선택과 결정의 기준이고, 내가 지켜야할 재산이며, 지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오늘의 한 절 : "주의 말씀이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편 11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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